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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 삼매 : 깨달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사라지는 것이다.

 

요가 생리학

  요가의 성취자(siddha)들은 nāḍī(經脈)를 통해 체내의 생명력을 조절할 수 있으면, 반드시 samādhi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하여 왔습니다.

  삼매(samādhi)단계에서는 iḍā, piṅgala, suṣumnā.가 가장 중요한 나디들입니다. samādhi는 nāḍī(經脈)들의 합일에서 비롯됩니다.  나디의 합일을 심리적인 용어로 ‘집중Dhāraṇa’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 나디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수행과정에 반드시 일어나는 생리적인 변화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다고 남회근은 다음과 같이 단언합니다.

  “도교든 밀교든 요가든 그 어느 것을 배우려 해도 또는 그 어느 것을 수련하려해도, 그들이 표방하는 경계에 도달하고자 하면 몸과 마음을 도구로삼는 것 이외, 즉 몸과 마음을 도구로 삼아 체험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에 의지할 만한 것은 없다. 똑같이 몸과 마음을 운용하는 것이라면 그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오장육부나 신경 및 골격이 달라질 리는 만무할 것이다. 그렇다면 각 이론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야기되는 관념 및 감각상의 환각 이외에 실제로 다른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관점의 차이로 인한 느낌의 차이일 뿐 또 다른 이질적인 몸과 마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뜻을 무상유가딴뜨라(anuttarayogatantra)의 『쌍모낭된낭제(금강신론석)』(꽁뚤 왼땐갸초)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 또한 짜(經脈, nāḍī)∙룽rluṅ(氣, Vāyu)∙틱레Tilaka(明点, bindu) 셋에 의해서 형성된다. 경맥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음에 있어서 반드시 맥도의 구조를 통달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육체의 맥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알지 못하면 바람의 흐름과 명점의 머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 신금강身金剛의 질료와 원리를 깨치는 것이 바로 짜(經脈)의 진실을 깨닫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며, 그리고 체내 경맥의 작용에 의거해서 마음에서 지혜가 발생한다고 <방편과 지혜의 딴뜨라>에서 설한 까닭이다." 

  Haṭhayoga의 수행 과정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은 nāḍī(經脈)의 작용에 의한 것입니다. 진동(kampa), 불(agni), 빛(jyotis), 환희심(ānanda), 秘音(inner sound)(nāda)의 들림, 자신의 사라짐(laya), 空性(emptiness)(śūnya)의 체험, 심작용의 정지(citta-vṛtti-nirodhaḥ), 삼매Samādhi는 모두 nāḍī(經脈)를 조절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것들은 무상유가딴뜨라의 성립 원리인 짜rtsa(經脈, nāḍī)∙룽rluṅ(氣, prāṇa)∙틱레tilaka(明点, bindu)에 의해 일어나는 것들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모든 영적 수행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타요가를 서양의 생리학이나 근골격 해부학, 신경 체계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매우 현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작부터가 잘못된 접근입니다. 

  생기(生氣)의 원리에 따라 성립된 수행체계를 생기의 원리를 배제한 그러한 접근은 일부분 도움이 되겠으나 본질적인 이해는 불가능합니다.

  나디, 즉 氣脈은 실재하는 것이고 모든 인간에게 있어 존재의 근본 조건입니다. 누구에게나 이다iḍā, 삥갈라piṅgalā, 수슘나suṣumnā, 간다리gāndhārī, 하스띠지흐바hastijihvā, 뿌샤pūṣā, 야샤스비니yaśasvinī, 알람부샤alambusā, 꾸후kuhū, 샹키니śaṅkhinī, 십이경맥十二經脈, 임맥任脈, 독맥督脈, 충맥衝脈 등의 작용에 의해서 마음이 움직이고 생명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 속에는 누구에게나 이다∙삥갈라∙수슘나가 작용하고 있으며 그 자체가 심신의 현상입니다.

 

  이다와 삥갈라 나디(흐름)는 음양의 원리처럼 상대적인 작용의 근원입니다. 이 상대적인 두 흐름이 수슘나(자비)로 사라질 때 삼매에 이르는 길은 멀지 않은 것입니다.

 

  이 모든 창조물들을 짜고 있는 긴 실을 누가 아는가?
누가 실 뒤의 실을 아는가? 그 분만이 지고의 실재를 알고 있다.(아타르바베다 X.8.37)

나는 이 모든 창조물들을 짜고 있는 길게 뻗은 실을 안다.
나는 실 뒤의 실을 안다. 그것이 지고의 Brāhmaṇa라는 사실도 안다.(아타르바베다 X.8.38)

 

   실가닥으로 우주를 짜듯이 우리몸도 나디 가닥들로 짜여 있습니다. 나디의 에너지 흐름은 실가닥과 같으며, 그것은 우주와 인간에게 동일하게 3가지 속성으로 함축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짜는 실은 3구나guṇa(3질, 3가지 속성의 실)로 구체화 되었습니다.그것은 삿뜨바 구나sattvaguṇa(순질), 라자스 구나rajasguṇa(동질), 따마스 구나tamasguṇa(암질)로서 인체에서는 수슘나, 삥갈라, 이다와 대응될 수 있습니다.

  삥갈라와 이다 나디 가닥이 수슘나로 몰입될 때 삼매는 멀지 않습니다.

 『요가수뜨라』의 주석, 『Yogasūtra Bhāṣya(요가수뜨라 주석)』에 삼매의 과정을 3구나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삿뜨바(순질) 속성이 따마스(암질) 속성에 종속될 때는 악(adharma)과 무지(ajñāna)와 탐욕(avairāgya)과 부자유(aniśvarya)로 향하게 된다. 그것(sattva)이 미망(moha)이라는 장애(āvarṇa)를 소멸할 때는, 어디에서나 빛을 내면서 라자스(동질) 속성과 섞여서, (dharma)과 지혜(jñāna)와 이욕(vairāgya)과 자유(iśvarya)로 향하게 된다. 순수 속성(sattva)이 라자스 속성이 지닌 아주 미세한 것들마저 떨쳐버리고 본성(svarūpa=puruṣa)에 안주할 때는 지성(buddhi)의 순수속성과 뿌루샤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서 법운선정(法雲禪定, dharmamegha-dhyāna)으로 향하게 된다. 그것이 최상의 명상(prasaṁkhyāna)이라고 선정에 든 자들은 선언한다.”(YB. 1.2_1-2)

   수행자가 높은 경지에 있으면서도 더 이상의 이익(바람)을 취하지 않을 때, 즉 그 경지로부터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그는 거기서도 초탈하여 언제나 식별지만을 갖게 됩니다. 이리하여 잠세력의 종자가 소멸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다른 관념들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때, 그에게는 법운(法雲)이라는 이름의 삼매가 발생합니다.

 최고의 명상[을 얻었더라도 그것에] 조차도 어떤 경우에도 아무런 이익(욕망)을 취하지 않는 자에게는 식별지로부터 법운삼매의 [경지가 나타난다.]”(『요가수뜨라』. 4.29)

   법운삼매의 경지를 얻은 자는 참된 지혜를 통해서 무지로 말미암은 여러 번뇌들을 완전히 차단하여, 모든 번뇌와 업이 모두 사라질 때 지혜를 가진 사람은 살아 있으면서도 해탈합니다. 이 법운삼매는 잠세력(saṃkāa)을 지닌 번뇌와 잠재업(karmāKśya)을 없애는 근원입니다. 거기에서 뿌루샤의 독존이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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